태어날 때부터 손에 카메라를 쥔 아이가 있었다.

There Was a Child Born with a Camera in Hand.

Photography Series, 2025


                                       태어날 때부터 손에 카메라를 쥔 아이가 있었다.
                                       일단 그 아이를 김 씨라고 부르자.

김 씨의 탄생은 나서부터 화제였다. 어떻게 태어날 때 손에 카메라를 꽉 쥐고 있었을 수가 있어?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미 발생한 일을 두고 가능했냐 묻는 게 타당한가요?

고사리 같은 두 손, 수분이 가득해 말랑한 두 손 사이에 검정과 실버가 조합된 카메라가 있었다. 38mm 화각의 1.8 조리갯값을 가진 렌즈도 달려있었다. 아이는 젖을 무는 법을 배우기도 전이었지만 노출과 초점을 잡고 셔터를 누르는 일은 본능처럼 알았다. 김 씨가 찍은 사진을 확인할 방법은 그가 만 4세 때까지는 없었다. 그의 카메라는 조악한 모양새였고, 최소한의 구성요소만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만 3살 때부터 뭔가 버튼이 하나 생기려고 꼬물꼬물 카메라가 움직이더니 그의 네 살이 되는 생일날 완전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김 씨의 부모는 조심스럽게 그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방에 있던 노트북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속 사진 데이터를 노트북에 옮겼다. 부모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자는 당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 부서에 연락을 넣어야 한다고 성원이었고 김 씨는 노트북에 떠오른 자신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이내 소리 내어 엉엉 울며 마구 떼를 썼다.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을 전부 전하기에는 아직 아는 단어와 문법이 충분치 않아 그렇게 소리만 지르는 것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김 씨는 어디를 가든 무얼 하든 항상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다. 세상은 전쟁통이고 그것은 자신을 지킬 유일한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땅 위 존재하는 모든 것을 렌즈로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는 김 씨의 무거운 발걸음, 그가 신고 있던 지비츠 왕창 달린 크록스 신발에 다 드러났다. 간혹 여자가 카메라를 가져가려고 하면 김 씨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되어 카메라를 마구 자기 쪽으로 당겼다.

여자와 남자, 아이가 말로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여자가 김 씨를 설득해 카메라에 스트랩을 달았다. 덕분에 두 손 자유롭게 카메라와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김 씨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것은 선고였다. 카더라하는 낭설이 아니라, 일부 사회학자만이 예견하는 미래가 아니라, 정말로 시대가 왔다. 새 시대, 이미지의 시대, 모두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공지능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가.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은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받는 대신 이미지를 주고받았다. 어른들은 이미지를 잘못 읽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이들은 전부 오독없이 읽을 줄 알았다. 이미지 네이티브들의 탄생을 당신은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그 시대에서 제일 가는 달변가가 되었다. 더 이상 굳이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사진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사진을 두고 문학이라 불렀다. 김 씨는 페이를 보고 일의 진행을 결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돈을 가졌다. 그래서 그 돈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위한 렌즈들을 샀다. 광각 렌즈와 망원 렌즈와 줌 렌즈와 그런 것들을 샀다. 근데 전부 며칠 쓰다가 창고에 들여놓았다. 생성된 지 몇십 년은 된 38mm f1.8 렌즈가 김 씨의 유일무이한 눈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김 씨의 터전에서 렌즈를 판단하는 기준은 선예도 같은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얼마나 선명하게 담기느냐, 손떨방 기능이 있느냐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해리포터에서 지팡이가 주인공을 선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선택해 줄 렌즈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렌즈를 자신의 눈과 두뇌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 렌즈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그를 화장시키고, 납골당에 두어 명절마다 기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